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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칼럼리스트 최희목
작성일 2008-10-27 (월) 12:40
ㆍ조회: 891  
라벤더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 . . .
                                                                                                                                                                                                                                                                                                                                                                     
                                          
 
 
 

 벼르고 벼르다   “라벤데일” 갤러리에 다녀왔다.


 

먼 길 가는 나그네에게 바람 불어 좋은 날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날은 달랐다. 바람이 불어도 좋았다. 우리 교민사회에서 보다 오히려 현지 키위 사회에 더 잘 알려진 문화공간이지만 달동네에 칩거하는 내게는 좀처럼 찾아 볼 기회가
오지않 았다. 미안하고 궁색한 변명 같지만. 
 
 



      인적 드문 거리에는 한 낮의 고요가 졸고 있고 청자 빛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쉼 없이 흐른다. 시야에 들어오는 먼 야산은 한 여름에도 누렇게 익어간다. 타는 목마름에 황토처럼 변했는가? 언제부터 인지 황금빛이 출렁이는 가을을 잊고 지내는 내게는 타는 여름이 익는 가을로 보인다. 나이가 들면 감각도 변하는가?

감성(感性)이 둔해지니 감정(感情)도 메말라가고 그러다 보니 감상(鑑賞)도 어려워져 간다. 늙어감이 주는 행복인지 불행인지 때로는 가늠키 어렵다.


미술품에는 문외한(門外漢)인지라 전시된 작품가운데 그림이나 조각 보다는 조상들의 손때가 묻었을 법한 우리 것에 눈길이 간다.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호롱과 석유 등잔(燈盞)이다. 이순(耳順)을 넘긴 내 나이 정도라면 모를까 밝은 전등불에 익은, 자라나는 지금 세대들은 아마도 일렁이는 호롱불 아래에서 책을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석유 등잔은 말 할 것도 없고.


  문명이 발달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 중 하나가 인간의 삶이 보다 편해진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편함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지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가 있을 것이다. 예전의 호롱불이 지금의 전깃불보다 못한 것이 있다면 불의 밝기이다. 그러나 가난한 시인에게는 희미한 호롱불이 시적 영감(靈感)의 원천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밝은 전등불이 시심(詩心)을 자극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삭풍이 몰아치는 엄동설한 긴긴밤에 호롱불을 켜고 낡은 잡지를 읽던 기억이 없는 사람은 호롱불이 주는 낭만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먼 세월의 뒤안길, 그 시절 나는 지글지글 끓는 구둘 묵에 배 깔고 누워서 “새벗”이나 “학원‘ 등을 읽으며 긴긴 겨울 밤을 보냈다. 방풍 방한이 잘 된 지금의 아파트와는 달리 당시의 우리네 집들은 찬바람에 문풍지가 우는 그런 구조이었다. 호롱불이 주는 낭만을 이해하기 어려운 요즘 아이들은 아마도 문풍지가 무슨 말인지도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우리 시야에서 살아지는 것이 어디 호롱불 하나뿐일까?
전시품 가운데는 축음기의 시조(始祖)가 한 대 있었다. 시조라고 부르는 이유는 과거 내가 봤던 일제(日製) 빅타 축음기와는 구조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리재생장치라는 점에서는 축음기와 비슷하지만 원통형 드럼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음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음반(音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제일 먼저 내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SP판이다. 지난 그 시절의 축음기는 전기가 아닌 태엽을 동력으로 삼았다. 한번 감으면 SP판 몇 장을 재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태엽이 다 풀려 가면 재생속도가 느려져 묘한 소리를 내곤 했다. 사운드 복스에 붙은 바늘이 다 달으면 다시 갈아 주어야 했다. 나중에 나온 LP 턴테이블의 픽업에는 다이아 바늘이 붙어있었다.


지금은 LP판을 거쳐 CD, DVD 시대이다. 불과 수십 년 만에 SP는 우리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 오디오 마니아가 골동품으로 소장하고 있을 뿐이다. LP판 역시 바늘이 필요 없는 CD에 밀려 머지않아 레코드 상점에서 살아질 운명에 처해있다.
이처럼 우리를 둘러싼 책 읽는 환경도 많이 변했고 듣는 음악 듣는 장치도 엄청나게 변해가고 있다.


하늘아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 어디 있을까?
세월에 빛 바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 무엇일까?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바르다고 인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주어진 삶을 유지하기 위해 육신에게 먹고 마시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영혼에게도 적당한 양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특정한 종교를 믿든 또는 그와 같은 제도적 신앙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무신론자이든 영혼을 맑게 하기 위한 양식(糧食)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양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술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화랑(畵廊)에는 인간에게 필요한 영혼의 양식이 푸짐하다.
라벤데일 갤러리와 부속 카페를 운영하는 두 사람은 아직은 중년으로 보이는 화가(畵家) 부부이다. 그러나 그림만 그리는 일반적인 화가는 아닌 것 같다. 창작활동을 넘어서 현지 사회에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에서야 현장을 찾았지만 S화백의 이름은 현지 언론을 통해 이미 오래 전에 접했었다. 월간지 "North & South"를 비롯해서 이 지역 신문인 "The Press"와 이름도 생소한 적지 않은 동네 신문들이 갤러리를 자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NZ가 이민을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적정수준의 인구 유지와 함께 문화의 다양화 추구이다. 일부에서는 황인종에 대한 편견도 만만치 않으나 평균적으로 보면 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특히 동양의 경우 일본이나 중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 일본은 국력으로, 중국은 유구한 역사와 그에 따른 문화로 현지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문화는 아직 현지 사회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 문화의 아류(亞流)로 간주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시점에서 현지인에게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문화공간이 한 개인의 노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민의 한 사람으로는 적잖게 부끄럽기도 하다. 우리가 이 땅에 굳건히 뿌리내리기를 바란다면 서양문화를 제대로 이해함과 동시에 우리의 문화를 현지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서 황인종에 대한 편견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문시간이 불과 두 시간 남짓했지만 현지인 세 그룹이 갤러리에 오는 것을 보았다. 시내 중심가에서 보면 결코 가까운 곳이 아닌 한적한 이곳에 그들이 발걸음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칩거하는 형편이라 과문해서 우리 교민이 어느 정도 다녀갔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남이 아니라면 현지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정도의 관심은 가져야 되지 않을까?


특히 자녀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우리 것을 보고 듣는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중년을 넘기고 노년에 접어들고 있는 형편이라면 아련한 옛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영혼의 양식을 갈구하고 있는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만남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갤러리는 전시 공간이 좁아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제대로 전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사재(私財)를 털어 또 다른 전시실을 만들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 그 동안 내가 듣고 본 사실을 종합해 본다면 갤러리는 분명 영리와는 거리 먼 것 같다. 만일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라면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동네에 한국문화공간을 벌리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책 가운데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이 있다. 처녀시절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었던 저자가 우리 시대의 현자(賢者)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는 남편 ”스코트 니어링“을 먼저 보내고 난 후 두 사람이 지상에서 꾸려온 아름다운 삶을 잔잔한 필치로 기록한 아주 감동적인 책이다.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이 험한 세상에서 무엇이 진정 바람직한 삶인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세상을 떠난 한 부부의 감동적인 삶을 왜 여기 와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일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다. 언제인가는 떠나야 한다. 이 자명한 진리를 부인하면 삶이 아주 고달파진다. 때가 오면 한 시대의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살아지지만 그들이 창조한 문화나 그들이 꾸려간 바람직한 삶의 기록은 후세에 전해진다. 이처럼 간단한 이치를 이제야 실감하는 나는 얼마나 속물적인 인간인가!


이처럼 단순 명료한 진리를 일찍 깨닫고, 시속에 영합하지 않으면서 투명한 영혼으로 바람직한 삶을 꾸려갔던 “니어링” 부부 같은 동시대인을 남녘 땅 한적한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목회의 길을 가는 H형의 초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라벤더 향기가 바람에 흩날리는 귀로에 동면하던 시심(詩心)이 살아났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졸작을 공개하는 이유는 내 이 무딘 감동을 니어링 부부의 삶을 기억하는 독자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임께서 부르시면


 


나 이제 가리라

청산으로 돌아가리라

노욕일랑 훌훌 벗어버리고

녹음방초 우거진 곳으로



나 이제 살리라

녹수와 더불어 살리라

명경지수에 조각배 띄우고

번뇌 망상 모두 버리고



나 이제 떠나리라

언제든지 떠나리라

그 날이 아니라도

미련 없이 떠나리라


 


 


 

                                                                                                                                 

 

 

 

 

 

 . . .마음의 눈으로. . .  

 

                                                          



남십자성 아래서   최희목



이 글은 비바코리아 신문 제233호 2008년 2월에실린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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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vendale  is located approximately 23km from Christchurch city,
towards Akaroa on Highway No. 75